11부에서 『세계 평화의 식단』의 저자 윌 터틀 박사(비건)가 동물 주민에 대한 연민을 키우는 것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지 설명합니다.
(터틀 박사님, 이 영적 위기의 진화적 측면을 고찰해 주시겠습니까?)
Dr. Will Tuttle: 그러지요. 오랫동안 이 주제를 연구하며 발견한 것은 우리는 모두 금기시되는 숨겨진 핵심을 가진 문화 속에서 태어났다는 겁니다. 문화적으로 이 문제를 금기시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식량, 오락, 연구 등 다양한 목적으로 동물들에게 일상적으로 자행하는 엄청난 잔혹 행위에 대해 깊은 죄책감과 슬픔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말하는 걸 금기시하며 그 때문에 이 회의가 그만큼 가치 있다고 봅니다. 금기시되는 주제를 실제로 말하니까요. 금지된 주제를 말할 때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안돼, 그건 말하지 말자』 그런데 이런 면도 있어요. 『와, 이건 굉장한 얘깃거리가 되겠군』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 문화 한가운데 감춰진 그림자라고 믿습니다. 그 핵심은 근본적으로 축소주의 정신입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 이 세상에 들어올 때부터 배운 것이며 우리는 이런 문화가 정해준 음식을 강제로 먹기 시작합니다. 엄마의 젖을 잃은 다음 잔인하게 죽은 동물의 고기와 젖을 먹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모든 존재를 하찮은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걸 배웁니다. 이는 생명을 상품화하는 정신이며 축소하는 정신입니다. 배척 정신이기도 한데, 일찍부터 특정 존재를 자비의 영역 밖으로 배척하는 걸 배우니까요. 그렇게 할 때 그 배척한 존재에게 저절로 폭력을 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가 쓰라고 있는 거야』 『그들은 영혼이 없어』라는 말을 하니까요.
우리 문화의 모든 단체는 기본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각자에게 이런 정신을 주입하는데 협조해 왔습니다. 우리 가족이라는 단체, 종교 단체, 교육 기관, 언론 단체, 정부, 법률 등 모든 단체가 그것이 무슨 문화이든 기본적으로 그 문화가 다시 재생산되도록 모두 함께 협력합니다. 그것이 파괴적이든 폭력적이든 아주 현명하고 자비롭든 그 문화 속의 단체들은 당연히 그런 식으로 일합니다.
따라서 제가 깨달은 것은 기본적으로 축소주의와 상품화, 착취, 배척 정신에 근거한 일상적인 폭력 행사에 참여가 강요됩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그보다 더 깊은 것은 분리입니다. 우리는 일찍부터 아침 점심 저녁 식사에 오르는 음식의 실체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르는지에 대한 실상에서 분리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분리하는 기술을 배워서 10살이나 12살, 15살이 되면 분리 기술에 능숙하게 됩니다. 그래서 열대우림을 모두 베어내고 파괴하여 황폐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리하고는 말합니다. 『아무 일도 없었어』
대양은 파괴되고 있고 우리는 거기서 분리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절망으로 자살해도 우리는 거기서 분리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근본적인 문화적 금기의 핵심은 우리 문화가 그 영혼과 핵심을 초월해 진화하기를 갈망하는 사고방식이라 봅니다. 우리는 더 깊은 차원에서 지구에 존재하는 목적이 성장하고 깨어나서 세상에 축복을 전하는 것임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세상을 축복하고 그 축복을 전하는 자신의 고유한 방법을 찾으러 여기 왔습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 이는 우리가 문화 측면에서 직면한 진짜 도전입니다. 왜 누구나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 비건이 되는 걸까요, 비건이 되는 것은 단순히 내 삶에서 세상으로 퍼지는 물결에 대해 책임지는 일이니까요. 또한 그것은 근원적인 포용 정신입니다. 『내 자비심의 영역에 모든 생명체를 포함할 거야』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건 근본적으로 극도의 치유이며 생명을 지지하는 태도이지만 태도 이상이며, 사실 그렇게 사는 거죠. 이론만으로 비건은 안 되며 그건 실천입니다. 그래서 비건을 좋아하는데, 비건은 살면서 실천하는 일이니까요.
제 생각에 외견상 대부분 사람들은 비거니즘을 항상 『안돼』라고 말하는 걸로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죄송해요, 안 돼요. 이걸 먹지 않아요. 아이스크림과 달걀도 먹지 않고요. 치즈도요. 안 돼요, 안 먹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러죠. 『정말 부정적이네요.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고만 하는군요. 동물원에도 가지 않겠네요』 하지만 제 생각엔 사실 『아니요』라는 보기에 부정적인 말이 거대한 『예』를 타고 있음을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친절과 자비, 지속 가능성, 자유와 평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축복과 정의에 대한 『긍정』이지요. 이는 기본적으로 다른 생명체에게 친절과 자비를 보여주는 삶을 따른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우리 형제자매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살생 행위에 보수를 주지 않음으로요.
마틴 루서 킹은 말했죠. 『어디서든 폭력은 모든 곳과 모두를 해칩니다. 우린 모두 연결되었죠』 따라서 만일 제가 지갑을 꺼내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든 식용으로 소나 닭을 죽이기 위해 그들을 감금하는 데 비용을 지급하기 시작한다면, 사실상 제게 그 책임이 있다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손대기 싫은 일을 그들이 하도록 돈을 지급하니까요. 이 밑에는 정말로 우리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아주 긍정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평화의 식단』에서 제가 처음에 언급했던 것의 하나가 바로 이 문화가 겪은 마지막 혁명으로 8천~1만 년 전에 있었습니다. 전 그것을 『가축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사실상 현재 이라크인 국가에서 시작했으며 가축을 소유하게 했죠.
최초로 사람들이 동물을 소유하고 재산으로 여기기 시작했는데, 그게 근본적인 타락이고 그것과 함께 다른 모든 것이 왔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소유하며 노예제가 생겼죠. 부자와 권력 집단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들이 자본을 소유했습니다. 『자본』은 가축의 『머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일만 년 전 초기 자본주의는 자본을 소유한 이런 부유한 권력 집단과 함께했으며, 그들은 더 많은 땅과 더 많은 자본을 원했습니다.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훔치는 것이었고, 전쟁에 나가 다른 자본가들이 그들의 가축을 훔치는데 대항해 싸우거나 그들을 이기고 가축을 획득했지요. 『전쟁』을 뜻하는 최초 단어인 『가브야』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더 많은 소에 대한 욕망을 뜻하며 『전쟁』의 최초 용어죠.
또한 패배한 사람들의 가축은 기본적으로 이긴 자의 재산이 됐으며, 패배한 남성은 노예가 되었고 여성은 첩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잔혹한 시대였고 사람들에게 최악을 불러왔습니다. 남성은 거세어졌고 잔인해졌으며 감정에서 분리됐습니다. 여성들은 노예 재산으로 사고팔 수 있게 격하됐습니다. 인류 최초의 기록인 고대 수메르인이 쓴 고대 서사시 길가메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처음으로 기록된 구약성서를 보면 그런 역사적 시대가 3천 년 전에 출현했으며 모든 것이 확립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예제도가 있었고 여성이 재산이었지요. 자연과 야생동물 또한 단순한 해충의 지위로 격하됐습니다. 그들이 우리 가축을 해칠까 봐, 없애길 원했습니다.
또한 누구든 최대의 자본, 양과 염소와 소를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사회를 통제하게 됐고 모든 단체를 통제했습니다. 그들이 종교와 교육을 통제했습니다. 지금과 뭐가 다른가요? 왜 오늘날에도 부자 권력자들에게 전쟁이 가장 이윤이 남는 일일까요? 우리가 여전히 똑같은 음식을 먹으니까요. 하루가 끝날 무렵 우린 집에 가서 잔인하게 도축된 동물의 살을 먹습니다. 또 잔인하게 도축된 같은 동물의 분비물을 먹습니다. 그렇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중대한 발전을 하고 정의와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하는 데 수많은 문제가 있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우린 아직도 같은 음식을 먹거든요.
근본적으로 여전히 『힘이 정의』라는 생각을 내면으로 강화하는데 그런 개념은 자비의 영역에서 다른 생명체를 배제할 수 있고, 그런 개념에서 전쟁은 돈을 버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이 이 문화의 기반이며 아무도 볼 수 없는 우리 문화의 핵심 속 살아있는 분노이며, 이에 대한 언급은 금기입니다. 따라서 일단 우리가 그걸 보기 시작하면 우리 문화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며, 그러면 왜 비거니즘이 필수이며 왜 그것이 지구를 축복하기 위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이며, 또한 왜 누구든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비거니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가장 자비롭고 신성하며 가장 고귀한지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비거니즘의 가장 핵심, 그 반대가 여성성에 대한 지배니까요. 이런 전체 시스템에서 가장 잔인하게 다뤄지는 동물이 암컷 동물들입니다. 낙농장과 돼지와 닭, 소와 물고기 같은 이 모든 공장식 축산에서 원래 무자비하게 통제하는 건 암컷 동물과 암컷의 생식 주기입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신성한 부분이 아이를 낳고 돌보며 먹이고 둥지를 지어주는 어머니이며, 그것이 자연에서 가장 신성한 존재임을 아는 우리 내면의 지혜와 감수성에서 분리되지 않았다면 암컷 동물에게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광으로 여기고 존경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낙농장과 이 모든 곳에서 암컷은 강간을 당하고 도살되며 갇혀서, 새끼들은 도난당하며, 다시 강간당하고 그 생산물을 빼앗깁니다. 그건 그들만 해치는 게 아니라 우리를 해칩니다.
모든 전통에서 과거 영적 가르침은 다른 누구를 해치면, 그들보다 자신을 더 해치는 거라고 강조하죠. 그러니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남들에게 해줘야 합니다. 즉 스스로 자유와 평화, 기쁨과 사랑을 원한다면, 남에게 그걸 줘야 합니다. 남들에게 고난을 주고 노예로 삼아 지배한다면, 우린 결국 지배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 문화에서 우리가 점점 더 노예화되는 걸 봅니다. 우리가 남들을 노예로 만드니까요.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남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제 생각에 존재의 근저에서 모두가 아는 해방의 가르침입니다.
제가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자라면서 엄청난 양의 육류와 유제품, 달걀을 먹었던 걸 기억합니다. 제가 8살 때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그러면 모두가 이런 걸 먹나요?』 그녀는 『응, 모두 이런 걸 먹어』라고 한 다음 『채식하는 이도 있지』라고 했는데, 그건 마치 『걱정 마, 채식인을 만날 일은 없어! 그들은 다른 행성에 산단다. 아주 머니까 걱정 마!』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12살, 13살 정도 됐을 때 이런 낙농장에 가게 됐습니다. 버몬트에 있는 여름 캠프에 가던 길이었고 그곳은 유기농 낙농 협회에 가입된 곳으로 60년대 중반인 걸로 생각됩니다.
아주 흥미로웠죠. 이런 곳은 좋은 것만 생산한다고 여기게 되잖아요, 버몬트 유기농 낙농장이니까요. 기억해 보면 우린 모두 내렸고 각자에게 닭을 붙잡으라고 했죠. 그리곤 닭을 땅 위 나무판에 대고 닭 머리를 두 못 사이에 끼우고 다른 손으로 도끼를 들고 닭 머리를 잘랐어요. 그럼 닭은 뛰면서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다 닭이 죽으면 닭의 사체를 가져와서 끓는 물에 넣어서 그 닭을 먹었어요.
기억하기론 12살, 13살쯤인데 그렇게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죠. 저는 세뇌를 잘 받았어요. 12 년, 13년 동안 하루에 3번씩 집중 세뇌를 받았어요. 닭은 그냥 닭일 뿐 별것이 아니라고 알았어요. 영혼도 없고 신이 닭을 우리가 먹으라고 두었으며 닭이나 고기를 안 먹으면 24시간 이내에 단백질 부족으로 죽는 줄 알았어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 해야 했어요. 그렇게 되어 있었죠. 좀 지나서 소에게도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소가 우유를 많이 생산하지 못하면 유기농 낙농장에서 끌어내서 소머리를 총으로 세 번 쐈습니다. 소가 땅에 쓰러지면 머리를 잘라 냈어요. 피가 사방으로 튀었는데 그는 이마를 조용히 닦으면서 말했어요. 『이렇게 해야 해. 동물 심장이 뛰는 동안 동맥을 잘라야만 해. 안 그러면 고기가 메스꺼워서 안 먹으려고 하거든, 피가 고인 고기는 싫어하니까』
우리 문화의 장막에 가려진 곳에는 거대한 살생이 자리 잡고 있어요. 매일 7천5백만의 동물이 미국에서 식용으로 도살됩니다. 이 숫자는 정말 놀랍고 그게 우리 문화의 배경이죠. 우리가 거부하는 장막 뒤를 들여다보고 이 폭력을 직시하지 않는 한, 대규모로 자행되는 잔혹 행위를 감내해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도축장이나 공장식 축산의 노동자들이 겪는 일들에 관한 책을 읽어보면 폭력, 배우자 학대,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 등 그들 삶의 비극을 알게 됩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만성 영양부족과 기아에 시달리며 또 다른 수백만은 만성 비만과 과체중에 시달리죠. 곡물을 먹인 동물을 먹어 치우니까요.
환경에 대한 대규모 유린과 우리 문화와 우리 종교에 의해, 모든 상황에 의해 우리에게 주입된 것에 숨어있는 분리 의식은 우리가 이것을 보길 원치 않기 때문이며 우리 근본 본성에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근본 개념은 본래의 자비심을 일깨우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가 모두 가진 큰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 문화가 갈망해 온 근본적인 자비로운 변화, 자비로운 혁명, 자비로운 진화이며 실제로 우리 행성에서 지금 당장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모두를 이 방에 초대해 이 이야기를 듣거나 언제든 이것을 본 다음 속해있는 사회로 돌아가 소식을 전하는 거죠. 『세계 평화의 식단』을 쓰며 은둔할 때 40명이 나가서 그들 지역 사회에서 『세계 평화의 식단』 개념을 가르쳤습니다. 우린 비건의 모든 방식과 형식에 대해 교육합니다. 그것은 민중 운동이죠. 아마 당분간은 대중매체에 보도되지 않겠지만, 우리가 충분히 강해지면 보도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훌륭한 소식을 계속 퍼뜨려 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축복을 빌며 여긴 멋지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사진: 『모든 계절은 우리에게 환상적인 존재의 덧없음을 일깨워 주지만, 동시에 그 이면에 있는 진정한 생명을 상기시켜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