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스웨덴의 위대한 과학자이자 발명가였던 그의 경력의 절정은 천국과 영들, 성인, 천사를 보며 시작됩니다. 1744년부터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는 생애의 십 년 이상을 영적 여정에서 자신이 본 것을 기록하는데 보냈으며 이십여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천국과 사후세계에 대한 그의 환시와 신은 사랑이라는 그의 깨달음, 성경의 더 깊은 의미의 발견 등이 그의 용감한 기록의 몇몇 혁명적인 주제입니다. 이 놀라운 영적 세계 탐험가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가 영적 사랑과 선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 『하나님의 섭리』를 오늘 소개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주님의 통치 『사랑이 행하는 선이 지혜가 인식하는 진리와 결합하지 않으면 선해 보일지라도 정말 선한 것은 아니다. 지혜가 인식하는 진리가 사랑이 행하는 선과 결합하지 않으면 진리처럼 보일지라도 정말 진리는 아니다. 문제의 진실에서 그것에 적절한 진실과 결합하지 않으면 진짜 선은 결코 생기지 않으며, 그것에 합당한 선과 결합하지 않으면 진짜 진실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진실한 것에서 분리된 선한 것과 선한 것에서 분리된 진실한 것이 있다. 이런 일은 위선자와 아첨꾼, 온갖 사악한 자와 세속 차원에서는 선을 행하지만, 영적으로는 선을 전혀 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발생한다.
이 모든 사람은 교회와 국가, 지역 사회, 동료 시민,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 과부와 고아를 위해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들도 진리를 이해하고, 잘 분별해 생각하고 진리를 이야기하고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선하고 진실한 성품은 특별히 깊지 않기에 그것을 과시하는 자들에게 본질적으로 선하고 진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적으로만 선하고 진실하므로 겉모습일 뿐이다. 그것은 단지 자신과 세속을 위해 존재하며, 선과 진리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선과 진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입과 몸에서 나온 것이지 가슴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찌꺼기나 썩은 나무, 똥 위에 덧씌운 금이나 은에 비유할 수 있고, 말로 표현한 진리는 흩어지는 우리의 숨결이나 흔적 없이 사라지는 도깨비불에 비유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여전히 진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진리는 사람들에게 꾸며진 겉모습과 같아 그것의 근원을 모른 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매우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외부에 영향받는 방식은 우리 내면에 달려 있다. 어떤 진리가 타인의 귀에 들어갈 때, 그것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에 상관없이 마음이 이해하는 방식은 자신의 상태와 자질에 달려있다. 전통적인 이유로 세상 차원에선 선한 일에 관여하지만, 영적으로는 선한 일에 관여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선하고 참된 것 안에 있는 것은 영적이며, 이것은 모든 거짓과 악을 추방한다. 그러나 오직 세속적인 것은 악과 거짓의 편을 들며 악을 지지하면 선한 일과 조화하지 못한다.
선이 진리에서 분리되고 진리가 선에서 분리되어도 여전히 선과 진리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에게 자유라고 부르는 행동 능력과 합리성이라고 부르는 분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을 악용하면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악한 사람이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하며, 마귀가 빛의 천사로 위장할 수 있다.
악의 근원은 합리성과 자유라 부르는 우리 고유의 능력을 악용하는 데 있다. 이 두 가지 능력은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존재한다. 사랑이 지혜와 결합하지 않고 (또는 선이 진리와 결합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다.
사랑이나 의지력은 지혜나 분별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랑과 의지력은 지혜나 분별력과 결합하고 지혜나 분별력이 기꺼이 결합하도록 상황을 정리한다. 사랑이 주는 힘 때문에 지혜와 분별력이 자라고 천국의 빛 속에서 사물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 사랑도 그 짝인 지혜를 똑같이 사랑한다면 같은 방식으로 자랄 수 있고 천국의 온기 속에서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 아니면 사랑은 분별력이나 지혜를 높은 곳에서 끌어내려 똑같이 행동하게 한다. 이 둘이 함께 자라면 우리의 분별력으로 사랑이 정화된다. 우리의 분별력 안에서 지혜로 깨끗해진 사랑은 영적이고 신성해지지만, 우리의 분별력 안에서 오염된 사랑은 우리의 감각과 육체에 국한하게 된다.
주님은 어떤 것도 분리된 채로 두지 않으신다. 이 말은 선한 것은 동시에 진리여야 하고 악한 것은 동시에 거짓임을 의미한다. 주님의 신성한 섭리가 작용하는 첫 번째 목표는 우리가 선하면서 동시에 진리인 것에 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으로 또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기 때문에 우리의 『선』이고 사랑이며 진리이고 지혜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선하지만 거짓인 것, 혹은 악하지만 진리인 것, 심지어 한 때는 악했지만 선한 것, 따라서 이중적인 것에 동시에 몰두할 수 있으며 이 분열은 주님의 형상과 우리의 그 인간성을 파괴하기 때문에 주님의 신성한 섭리는 행하는 모든 일에서 이 분열을 없애려고 한다』